top of page

Son In Sun

이동 하는 공기들 푸른 대기의 실루엣, 투명한 시간의 베일 늦은 밤 작업실에서 마주한 손인선의 근작은 흰 캔버스에 밑그림처럼 보이는 회화였다. 한 숨 돌리고 작업실 펼쳐놓은 작품을 보면서 나는 ‘이거 완성인가요’라고 물을 뻔 했다. 그렇게 손인선의 작업은 한눈에 단박에 와 닿는 시각적 임팩트를 기대하는 시선에는 좀처럼 포착되지 않는다. 작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차츰차츰 그의 작업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길게 오래 그리고 작품을 보는 거리와 환경을 달리하며 보아달라는 작가의 요청이 황망하면서도 반가웠다. 회화의 시대는 갔지만 여전히 화가의 손을 거쳐서 완성되는 시각적 감성의 세계는 유효하다. 아니 디지털 영상의 시대이기에 회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세계는 더욱 독보적이라고 할 것이다. 손인선이 이번에 선보이는 근작들은 흰바탕에 청색과 붉은색의 색연필로 나뭇가지나 구름의 형상을 구현한 작업이다. 근자에 캐나다 여행중에 광대한 하늘을 마주하고 일순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듯한 체험을 한 것이 이런 작업을 시도하게 된 출발점이었다. 손인선이 인상적으로 회고하는 여행지에서의 순간은 드높은 침엽수를 배경으로 광대하게 펼쳐지는 북미대륙의 파란 하늘이었다. 항상 존재하는 하늘이지만 높은 전나무와 거대한 동상이 대비되어 그 공간적 실체가 압도적으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현실의 시간과 공간이 순간적으로 멈춰버리고 새롭게 현시된 세상의 모습에 작가는 개안한 사람처럼 주변의 공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손인선의 회화에서 유기적인 형상으로 가시화 되는 나뭇가지들은 놀랍게도 도시의 일상적인 생활 공간에서 흔히 마주 할 수 있는 가로수들이다. 새벽의 여명이나 어스름한 해질녘은 낮과 밤이 교차하는 시간대인데, 이때 대기의 흐름이나 공간의 실체는 더욱 선명하게 가시화 된다. 변화하는 대기의 흐름 속에서 평범한 나무나 구름이 평상시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공간의 깊이와 두께를 드러내는 매개물로 작용하는 것이다. 손인선은 그런 순간의 기억과 대기의 느낌을 재현하기 위해서 회화 평면을 선택했다. 매혹적이지만 좀처럼 포착하기 어려운 순간이기에 그 작업이 예민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번 백색 젯소칠을 하고 마지막으로 옅은 청색톤이 가미된 바탕칠로 회화 평변이 준비된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단색조이지만 미묘하게 색조를 달리하는 여러 종류의 색연필들이 사용된다. 그의 시선이 공기의 작용과 공간의 깊이를 재현하는데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화면 위에 거듭된 필선으로 형상화되는 이미지는 정작 그 자체보다는 사물을 감싸는 대기의 실루엣과 베일처럼 드리워진 시간의 흐름을 포착하기 위한 것인데, 이를테면 그의 그림에서는 그리지 않은 것이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엷은 망사처럼, 섬세한 거미줄처럼 주변에 드리워진 섬세한 대기의 흐름이 톤을 달리하는 옅은 필선으로 조금씩 두께를 더해가며 나뭇가지의 형상을 드러낸다. 그의 작업은 한 번에 확고하게 이루어 질 수 없다. 섬세한 공기의 층을 조금씩 걷어내며 앞으로 나아가듯 손인선은 회화 표면 위에 유려하고 여린 필선을 촉각적인 방식으로 누적시킨다. 망설이면서 더듬으면서 그렇게 그의 화면에는 대기가 쌓여간다. 긴 호흡과 오랜 기다림, 그리고 아끼고 절제하는 시적 표현의 언어로 그의 회화 평면은 아득한 동경처럼 희미하지만 매우 구체적인 방법으로 미세한 차이와 섬세한 깊이, 투명한 대기의 흐름을 포착해나간다. 하염없이 바라보아야 하는 대기의 흐름처럼, 뭉게구름 뒤로 무한한 실체를 드러내는 높은 하늘처럽 오래오래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손인선의 회화다. (권영진. 미술사 2008) ​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 바람에 잔잔히 흔들리는 나뭇가지, 한가로이 내리는 눈, 신비하게 방안을 비추는 한줄기 햇빛. 이러한 충만감 고요함이 좋다. 저 너머에 있는 그 무엇, 존재의 근원에 닿는듯한 느낌. 마음의 정적 속에서 보이는 세계의 고요한 순간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현실의 이편, 지금 이 순간이 유일한 기회인 것처럼 현실세계 나무의 객관적이고 찰나적인 모습을 통해 그 순간을 가시화하려 한다. 캔버스의 바탕과 손이 맞닿는 순간 신체를 통한 체험은 찰나의 지금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리기와 지우기의 반복적인 과정에서 생기는 먹지의 번짐은 그림을 에워싸는 분위기(Aura)를 만든다. 나는 그 분위기에서 알 수 없는 세계의 깊이를 느낀다. 배경의 빈 공간은 비움이 주는 무한함으로 자연의 무차원적인 시간성과 공간성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그리는 행위는 마치 나무의 결을 만지는 것처럼 나무의 본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이다. 자연에서 체험한 이러한 충만감은 마치 나무의 결처럼 세심하고 따뜻하다. 이러한 정서는 내가 바라보고자 하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작가노트 손인선)

Right here, right now Branches swaying gently in the wind, snow falling leisurely, and a mysterious ray of sunlight shining through the room. I like this sense of fullness. Something beyond, a feeling that touches the source of existence. It was intended to represent the quiet moment of the world seen in the silence of the mind. On this side of reality, just as this moment is the only opportunity, we try to visualize the moment through the objective and fleeting appearance of the real world tree. As soon as the hands touch the canvas's background, the experience through the body reveals the moment. The smudging of the food that occurs during the repeated process of drawing and erasing creates an atmosphere (Aura) surrounding the painting. I feel the depth of the unknown world in that atmosphere. The empty space in the background is to express nature's dimensionless timeliness and spatiality with the infinity of emptiness. The act of drawing branches one by one feels like touching the grain of a tree and getting closer to the essence of the tree. This feeling of fullness experienced in nature is as meticulous and warm as the texture of a tree. This sentiment is also the way of life that I want to look at.

2월의 나무_톤수정.jpg

works

bottom of page